◈ 엄선한 공포실화
공포실화괴담 30 [엘리자베스 바토리를 아시나요?]
빵구똥구
2010. 3. 6. 22:49
[웃대 펌]
안녕하세요~잭더리퍼에 관한 글을 올린 BEG의리더 JeAh에요~
심심해서무서운글한개더올립니당~
바로 피의여왕 이라고 불리었던
엘리자베스 바토리 에관한
이야기 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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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바토리(Elizabeth Batory)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560년 트랜실베니아에서 가장 유서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5살이 되던해에 당시 26살이었던 Ferenc Nadasdy백작과
결혼후 남편이 없는동안 하인으로부터 악마숭배, 신비주의등등의 것들을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져있죠..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3과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바토리는 유모, 집사, 하인, 숲에 사는 마녀와 또 다른 마녀등과 함께 수시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남편 Ferenc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하고, 이것이 충격이었는지
바토리는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들어 처음엔 동물을 제물로 바치더니 나중엔
인간제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굉장한 미인이었던 바토리는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
고 있음을 개탄하고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여 예전의 미모를 되찾으려 했는데요,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끔 진짜 예쁜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 "특별 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마지막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그냥 받아마셨다고도 합니다.
(그녀의 잔혹한 성품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면 배나무사건을 들수있는데, 한농가의
소녀가 배를 훔쳐먹자 바토리는 그 벌로 소녀를 배나무에 매달아 온몸에 꿀을바르도록
시켰죠. 꿀 냄새를 맡은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고, 소녀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에게 쏘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 부어서 죽었죠....)
시간이 지나자 바토리는 처녀의 피가 별효과가 없다고 느꼈고, 그녀의 측근들은
천한 농가 처녀의 피보다는 귀족처녀의 피가 더효과있다고 그녀를 부추겼습니다.
그러자 바토리는 귀족처녀를 끌여들여 농촌처녀들과같이 피로 목욕을 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조심성을 잃었는지 고문받던 처녀가 극적으로 성을 탈출해서 정부당국에
바토리를 신고하게 됩니다.
1961년에 열렸던 재판에 바토리는 참석조차 하지않았고 집사였던 이는 37명의 처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바토리의 일기에 의하면 총612명을 살해했다고
적혀있죠..바토리는 결코 그들을 쉽게 죽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몇 주,
간혹은 몇 달에 걸친 고문 끝에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은 가위로 잘리고, 핀으로 찔리고,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우리에 가두어져 매달리곤 했습니다.
또 허공에 매달아놓은철창에 처녀를 집어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면, 바토리는
그 찰창 밑에서서 밑으로 흐르는 피로 "샤워"를 했죠..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 바토리만은 오로지 귀족이라 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바토리는 그대신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감금된지 4년만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어있습니다.)
안녕하세요~잭더리퍼에 관한 글을 올린 BEG의리더 JeAh에요~
심심해서무서운글한개더올립니당~
바로 피의여왕 이라고 불리었던
엘리자베스 바토리 에관한
이야기 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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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바토리(Elizabeth Batory)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560년 트랜실베니아에서 가장 유서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5살이 되던해에 당시 26살이었던 Ferenc Nadasdy백작과
결혼후 남편이 없는동안 하인으로부터 악마숭배, 신비주의등등의 것들을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져있죠..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3과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바토리는 유모, 집사, 하인, 숲에 사는 마녀와 또 다른 마녀등과 함께 수시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남편 Ferenc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하고, 이것이 충격이었는지
바토리는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들어 처음엔 동물을 제물로 바치더니 나중엔
인간제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굉장한 미인이었던 바토리는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
고 있음을 개탄하고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여 예전의 미모를 되찾으려 했는데요,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끔 진짜 예쁜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 "특별 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마지막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그냥 받아마셨다고도 합니다.
(그녀의 잔혹한 성품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면 배나무사건을 들수있는데, 한농가의
소녀가 배를 훔쳐먹자 바토리는 그 벌로 소녀를 배나무에 매달아 온몸에 꿀을바르도록
시켰죠. 꿀 냄새를 맡은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고, 소녀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에게 쏘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 부어서 죽었죠....)
시간이 지나자 바토리는 처녀의 피가 별효과가 없다고 느꼈고, 그녀의 측근들은
천한 농가 처녀의 피보다는 귀족처녀의 피가 더효과있다고 그녀를 부추겼습니다.
그러자 바토리는 귀족처녀를 끌여들여 농촌처녀들과같이 피로 목욕을 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조심성을 잃었는지 고문받던 처녀가 극적으로 성을 탈출해서 정부당국에
바토리를 신고하게 됩니다.
1961년에 열렸던 재판에 바토리는 참석조차 하지않았고 집사였던 이는 37명의 처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바토리의 일기에 의하면 총612명을 살해했다고
적혀있죠..바토리는 결코 그들을 쉽게 죽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몇 주,
간혹은 몇 달에 걸친 고문 끝에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은 가위로 잘리고, 핀으로 찔리고,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우리에 가두어져 매달리곤 했습니다.
또 허공에 매달아놓은철창에 처녀를 집어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면, 바토리는
그 찰창 밑에서서 밑으로 흐르는 피로 "샤워"를 했죠..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 바토리만은 오로지 귀족이라 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바토리는 그대신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감금된지 4년만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어있습니다.)